암리차르행 기차
오늘은 뉴델리에서 암리차르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아침 7시 20분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 6시 20분경 숙소를 나섰다. 숙소에서 뉴델리역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방 안에 머무는 것이 답답해 일찍 나섰다.
골목길 개조심
새벽 빠하르간지 거리 골목은 어두컴컴했는데 개들이 중간 중간에 떼를 지어 모여있다. 낮시간에는 개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데 새벽이나 밤에는 상당히 위협적이다.

개들이 외국인을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고 한다. 인도인과 외국인이 같이 있어도 외국인만 골라서 물어 댄다는 말이 있다. 여자도 주요 타켓 중의 하나라고 한다.
밖으로 나갔더니 개들이 으르렁 거린다. 잠시 인도인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를 방패로 삼아 천천히 걸어간다. 하지만 언제 갑자기 달려들지 몰라서 옆과 뒤를 힐끗 쳐다보면서 간신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뉴델리역 사기꾼
역 입구에서는 소지품을 엑스레이로 검사했다. 이때 한 인도인이 다가와 티켓을 보여달라고 해서, Ixigo 앱에 저장해둔 모바일 승차권을 보여줬다. 그는 외국인은 모바일 티켓으로 역에 들어갈 수 없으니, 코넛 플레이스에 있는 사무실에서 종이 티켓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기차 출발까지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먼 곳까지 다녀오라는 건 불가능했다.

수상하게 여겨 경찰을 불러달라고 하자, 그는 그냥 통과하라고 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종이 티켓으로 교환하라는 말과 함께 툭툭을 소개하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었다. 인도 기차역 주변에 이런 사기꾼이 많지만, 별다른 제재가 없는 현실이 아쉬웠다. 인도 수도인 뉴델리 기차역에서 이런 사기꾼이 판치고 있는 것이다.
역사내 노숙자
역사 안으로 들어가니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가 춥지 않은데도 맨바닥에서 잠을 자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하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집이 없어서 이렇게 역사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기차는 뉴델리가 출발역이어서 플랫폼에 가니까 기차는 이미 들어와 있다. 2A칸에 올라탔고, 기차는 정시에 뉴델리역을 출발해 암리차르로 향했다.
시크교도와의 좌석 에피소드
기차 좌석은 한쪽에 3석, 반대편에 2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암리차르로 향하는 열차라 그런지, 객차 안에는 터번을 쓴 시크교 신자들이 많았다. 나는 창가 좌석을 예약했지만, 출발 5분 전까지 내 주변 6~7자리가 텅 비어 있어 혹시 넉넉하게 갈 수 있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곧 터번을 쓴 건장한 시크교 신자 6명이 내 쪽으로 다가왔고, 그중 빨간 터번에 흰옷을 입은 체격 좋은 분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머지 일행은 내 앞뒤 좌석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나는 창가에 앉아 앞뒤와 양옆이 모두 시크교 신자들에게 둘러싸인 셈이었다.

옆자리 분은 팔자 수염에 팔을 넓게 벌리고 앉아 팔걸이와 내 공간 일부까지 차지했다. 기차는 출발과 동시에 역방향으로 달렸고, 좁은 좌석에서 대장의 팔꿈치와 발이 내 공간을 점점 침범해왔다. 앞자리 승객은 의자를 뒤로 확 젖혔고, 나도 따라 눕고 싶었지만 뒷자리의 근엄한 시크 신자와 눈이 마주쳐 곧 포기했다.
식사가 제공되자 논베지 메뉴로 계란 오므라이스 비슷한 음식이 나왔고, 옆자리 대장은 베지 메뉴로 보이는 동그란 경단을 먹었다. 그는 버터 포장을 뜯지 못해 애를 먹었고, 내가 대신 벗겨 건네 주자 무표정하게 내 것을 받고 자기 것을 내게 건넸다.

이후 빵을 먹고 허브 사탕을 한입에 털어 넣더니, 핸드폰으로 시크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통화하며 일행과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7시간 내내 앞뒤와 옆에서 압박을 받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암리차르 역에 도착할 즈음, 옆자리 대장이 근엄한 표정으로 “자퐁(Japan)?”이라고 묻는 것으로 긴 여정이 마무리됐다. 역에서 숙소까지는 천천히 걸어갔고,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고가도로를 타기도 했지만 무사히 도착했다. 숙소는 깨끗하고 쾌적했지만, 밤이 되니 다소 쌀쌀했다. 암리차르는 파키스탄과 가까운 펀자브 지역에 위치해 인도 내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낮은 편이다.
이곳은 시크교의 중심지로, 인도 전체 인구 중 약 1.7%가 시크교를 믿고 있으며, 펀자브 주에서는 시크교도가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시크교는 육식을 허용하고 신체 단련을 중시해 경호원이나 경비원 등으로 일하는 이들이 많다. 암리차르에서는 시크교의 전통과 문화를 곳곳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암리차르 바로 가기
황금 사원(Golden Temple, Harmandir Sahib)
황금 사원은 펀자브 주 암리차르에 위치한 시크교 최고의 성지다. 16세기 후반에 지어진 이 사원은 약 500kg의 순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건축과 고요한 연못이 어우러져, 영적 평화와 환대의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1984년 6월, 시크교도들이 황금 사원에서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인디라 간디 총리는 군대를 투입해 강경 진압을 감행했다. 이른바 블루 스타 작전(Operation Blue Star)으로, 탱크와 박격포까지 동원되어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아두르 파즈한 싱 등 시크교 지도자들은 내전과 총리 신변 위험을 경고했지만, 인디라 간디는 반대파를 해임하고 아룬 바이디야 대장, 시크교도 장군 쿨딥 싱 브라르 등을 지휘관으로 임명해 진압을 강행했다.

그 결과, 인디라 간디는 1984년 10월 31일 자신의 시크교도 경호원에게 피격 당해 사망했다.
황금 사원 방문기
오늘은 황금 사원을 찾았다. 이곳은 24시간 개방되어 있으며, 누구나 무료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입구에서 신발을 맡기고, 사원에 들어가려면 터번을 써야 한다. 터번은 입구에서 빌리거나 구입할 수 있다.
터번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자 시크교 신자가 직접 도와주었고, 머리를 완전히 가려야 한다고 설명해줬다. 입구 앞에는 손을 씻는 곳과, 발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연못이 있고, 그 중앙에 황금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지붕은 500kg의 순금으로 덮여 있다. 연못 둘레를 따라 산책할 수 있고, 공식적으로는 사진 영상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휴대폰으로 찍는 것은 크게 제지하지 않는다.
곳곳에 시크교 복장을 한 사람들이 긴 창을 들고 순찰을 도는데, 모두 자원봉사자라고 한다. 암리차르 연못(Amrit Sarovar)은 신성한 물로, 이곳에서 목욕하면 치유의 힘이 있다고 전해진다. 사원 주변에는 기도와 명상에 잠긴 신도들이 많다.

옷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몸을 씻거나, 물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아침이라 쌀쌀했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연못 주변에는 탈의실과 입수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건물은 매우 아름답고, 중간에는 방문객 누구나 무료로 식사할 수 있는 langer hall(무료 급식소)이 있다.

전세계 자원 봉사자
이곳에서는 하루 2만 5천 명이 무료로 식사를 하며, 잠자리도 제공된다.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며,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열려 있다. 나는 여행 초반이라 혹시라도 물갈이 등을 염려해 식사는 하지 않았다.
입구 광장에는 파란색 힌두사원(Prachin Shani Mandir)도 눈에 띄고, 주변에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