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즈강 보트
오늘 아침에는 쾌속선 스타일의 배를 타고 약 20여 명의 인도인들과 함께 갠지스강을 누볐다. 아침에 바라보는 갠지스강은 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강가 곳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목욕 의식을 치르고 있었고, 일부는 생수병에 강물을 담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힌두교 신자들은 갠지스강의 물을 신성하게 여겨 마시거나 의식에 사용하기도 한다. 외부인의 시각에서는 위생이 걱정될 수 있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영혼을 정화하는 신성한 행위로 여겨진다.
약 30분간의 배 여행을 마치고 다시 가트에 도착했다. 이후 고돌리아 삼거리 근처의 St. Thomas Church 지나며 바라나시의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풍경을 체험했다.
St. Thomas Church 바라나시의 분주한 거리 한가운데 자리한 평화로운 성공회 교회로, 독특한 건축미와 고요한 분위기로 잠시나마 도심의 소란을 잊게 해준다.
신성한 사원 스리 카시 비쉬와나스 템플
이어 바라나시에서 가장 신성한 사원 중 하나인 스리 카시 비쉬와나스 템플 (Shri Kashi Vishwanath Temple)도 둘러보았다.
이 사원은 힌두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수백 년간 시바 신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매일 수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며, 갠지스강에서의 목욕과 사원 참배는 해탈(모크샤)을 위한 중요한 의식으로 여겨진다.

사원을 보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가뜩이나 좁은 바라나시의 골목 한쪽을 막고 끝도 보이지 않게 줄을 선다. 한쪽은 남자줄이고 다른쪽은 여자가 줄을 서고 있다.
사원을 중심으로 수백명이 수백미터의 줄을 지어 둘러싸고 있다. 짐 보관소와 사원에 바칠 꽃을 파는 상점으로 인산인해이다. 참배객을 보호하고 사원을 관리하는 경찰들이 소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다.
총에는 탄창도 있다. 안에 실탄이 있는지 없는지 알수는 없지만 사뭇 경계태세가 진지하다.
아침 배를 타고 바라본 갠지스강의 풍경, 그리고 다양한 종교적 공간을 둘러보는 경험은 바라나시만의 독특한 문화와 신앙의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화장터
점심 식사 후 갠지스강 가트를 따라 상류로 걷기 시작했다. 약 10분쯤 지나자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화장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에서는 실제로 네 명이 들것에 시신을 싣고 이동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고, 발가락만 드러난 채 운구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충격적이었지만, 죽음 앞에서 자연스레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모여 장작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죽음에도 빈부 격차
이곳에서는 경제적 여건에 따라 장례 방식도 달라진다. 부유한 사람들은 충분한 양의 장작을 구입해 시신을 완전히 태운 뒤, 남은 재를 갠지스강에 뿌린다.
반면, 가난한 이들은 장작을 충분히 살 수 없어 시신이 완전히 타지 않은 채로 강에 보내기도 한다. 자기 키 만한 나무조각 하나 사서 겨우 불만 붙이고 타지도 않은 상태로 버려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인도인들은 다음 생애가 있다고 믿으며 다음 생에는 부디 높은 카스트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한다. 현재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서 그런것 같다.
화장터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카스트 제도의 가장 하층민인 수드라 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불가촉천민 이라고 한다. 불가촉천민과는 같은 공간에서 있는 것 조차도 피한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나를 태우는 나무 구입
나무조차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다른 건물에는 전기 화장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기화장터를 이용하지 않아 예전에는 텅텅 비었다고 한다.
가장 성스럽게 죽는 것은 나무로 화장하여 시신을 갠지스강에 뿌리는 것이라고 한다. 나무도 향나무가 제일 좋다고 한다.

화장터 한쪽에는 큰 저울이 있어 장작을 무게대로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빈부에 따른 차별이 이어진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장작과는 별개로 화장하는 불씨를 별도로 구입해야 한다고 한다.
죽음을 초월하는 인도인
바라나시에서 죽고 갠지스강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는 이들이 많아, 임종이 가까운 사람들은 인도 각지에서 이곳을 찾아와 죽음을 기다린다고 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오래 살게 되어 난처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인도 정부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공동으로 임종때까지 살 수 있는 공동건물을 지어서 살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 화장터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한 서양인이 시신이 타는 곳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다가 현지 노인에게 제지를 당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망자를 향한 예의가 지켜져야 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바라나시 골목안
바라나시의 골목은 정말 미로와 같다. 골목 골목 너무 복잡하기도 하고 방향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골목마다 수많은 구멍가게와 식당 등 다양한 상점이 수없이 있는 곳이다. 골목이 너무 좋아 바라나시에서 몇 개월 동안 머무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블루 라씨
화장터를 지나 바라나시에서 유명한 블루라씨 가게로 향했다.
좁은 골목길을 30분쯤 걸으니 현지인과 외국인 모두 북적이는 가게에 도착했다. 밖에서 머뭇거리자 주인이 유창한 한국어로 들어오라고 권했고, 요즘 망고라씨가 맛있다며 추천했다.
약 10분 기다려 받은 라씨는 걸쭉한 요구르트에 망고 등 다양한 토핑이 올라간 맛으로, 가격은 150루피 정도였다. 주인은 한국어를 매우 잘했고, 맛있게 먹었냐며 인사를 건넸다.
철수네 집
원래는 철수 씨가 운영하는 곳에서 설명을 들으며 배를 탈 계획이었으나, 배를 타는 사람이 없어 운행하지 않았다. 철수 씨는 한국에 가본 적이 없지만, 현지에서 익힌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놀라움을 느꼈다.

바라나시에 대해 “성스러운 곳”, “일생의 기회”, “인도정부의 수수방관”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을 보고 인상 깊었다.
야간 유람선
숙소로 돌아와 야간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가격을 흥정해 200루피에 탑승했지만, 구명조끼는 절반만 지급됐다. 구명조끼를 달라고 해도 괜찮다고 하면서 주지 않는다.
최근 갠지스강에서 선박 전복 사고로 많은 이가 희생된 후로 단속이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안전이 완전히 보장되지는 않는 듯했다.

2층짜리 큰 유람선은 약 40분간 강을 오르내리며, 중간에 승무원이 강변 건물에 대해 설명했으나 힌디어로 알아듣기는 어려웠다.
유람선이 출발지로 돌아오자, 어둠 속에서 뿌자 의식이 시작됐다. 배에 앉아 바라본 뿌자 의식은 경건함과 신비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강가에 지어진 수많은 건물들은 예전에 왕족이 가장 성스러운 갠지즈강에서 운명을 맞이하기 위하여 강가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살다가 죽으면 바로 화장터로 가서 24시간 내에 시신을 화장해야 한다고 한다.

갠지즈강은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콜카타가 있는 바다쪽으로 흘러가는데, 강의 중간에 위치한 곳이 바로 바라나시라고 한다.
아쉬운 갠지즈 강
다음 날 아침, 근처 식당에서 든든하게 식사한 후 짐을 챙겨 나왔다.
화장터 옆 전망대에 올라 다시 한 번 갠지스강을 바라보니, 강에는 수많은 사람과 배, 그리고 강 건너편에는 텐트를 치고 낙타 투어를 준비하는 이들도 보였다. 멀리 낙타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다시 화장터를 바라보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인도인들은 내세와 윤회를 굳게 믿는다고 한다.
다음 생에는 더 나은 신분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조용히 기도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바라나시를 떠나 아그라로 향했다.
기차역까지는 툭툭을 타고 100루피에 이동했다. 역에 도착해 간식과 생수를 사서 13시간의 긴 기차 여행을 준비했다. 화장실 문제를 생각하니 음식 섭취도 조심스러웠다. 이렇게 바라나시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아듀 바라나시
기차는 바라나시 시티 역에서 출발했다.
이 역은 바라나시의 주요 역인 바라나시 정션보다 한 정거장 앞에 위치해 있다. 내 표에는 8번 플랫폼에서 탑승하라고 적혀 있었지만, 열차 도착 10분 전까지도 전광판에는 플랫폼 정보가 표시되지 않았다.
궁금해서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조금 긴장한 채 기다리다가, 기차 도착 3분 전에야 전광판에 9번 플랫폼으로 안내가 떴다. 서둘러 플랫폼을 옮겨 열차에 올랐다.

이번에도 내 자리는 위쪽 침대였다. 아래층에는 부부와 어린 아들이 앉아 있었는데, 내가 아그라까지 간다고 하자 그들은 자이푸르까지 간다고 했다. 나 역시 아그라에서 3일 머문 뒤 자이푸르로 갈 예정이라 서로 반가워했다.
어린아이는 내 모습이 신기한 듯 자꾸 쳐다보며 웃었다.
자신이 먹던 과자를 내게 건네 주길래, 나도 준비해 둔 초코칩 비슷한 간식을 건넸더니 고맙다고 인사했다. 피곤해서 위쪽 침대에 올라가 쉬었다.

혹시나 추울까 걱정했지만, 밖이 더워서인지 객실이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바라나시의 낮 기온은 약 32도 정도였다. 기차 안의 에어컨은 개별 조절이 불가능해 계속 바람이 나왔다.
중간에 잠에서 깨어 지도를 확인해보니, 원래 들를까 고민했던 러크나우를 지나고 있었다. 카주라호에 가보고 싶었지만, 기차 연결이 쉽지 않아 결국 포기한 것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