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리차르 2일차 여정으로 오늘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에 있는 와가 보더를 간다.
와가 보더(Wagah border)
오늘은 와가 보더(Wagah Border)를 방문하는 날이었다. 이곳은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국경 지대로, 매일 저녁 국기 하강식이 열리는 장소다. 암리차르 도심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있으며, 황금사원 근처에는 와가 보더로 가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호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동 방법은 택시, 툭툭, 투어버스, 일반 버스 등 다양하지만, 나는 투어버스를 이용했다. 투어버스는 Statue of Maharaja Ranjit Singh 근처에서 출발한다.
국경 가는 투어 버스
승객이 많으면 버스 두 대가 동시에 떠나기도 한다. 출발 시간은 오후 2시 30분이고, 국경까지는 약 한 시간이 걸린다. 택시나 툭툭도 많지만, 툭툭은 여러 명이 함께 타기도 하고 승차감이 좋지 않아 투어버스를 추천한다.

아래 동상 사진 옆에서 와가보더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
요금은 왕복 약 285루피였고, 2층 버스라 1층은 에어컨이 있어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국경에 도착하면 버스는 주차장에 세우고, 관광객들은 행사장까지 약 10분 정도 걸어간다.

입장 전에는 소지품 검사가 있는데,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라고 하기도 한다. 아마도 카메라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려는 듯하다. 특별한 제지는 없고 행사장 건물로 들어가면, 인도 쪽은 파키스탄 쪽보다 훨씬 큰 스타디움 형태다. 외국인들은 국경 쪽 별도 좌석에 앉을 수 있게 배려되어 있다.

이미 많은 서양 관광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나도 그곳에 앉았다. 파키스탄 쪽은 스탠드를 높이기 위해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장비가 부족한지 인부들이 직접 자재를 옮기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힘들게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치열한 응원전
잠시 후 인도 측에서는 여성들이 나와 깃발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모두 일반 시민들로, 약 100명 정도가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깃발을 흔든다. 이는 인도 여성의 자유로움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라고 한다.

이어서 인도 여성 군인들이 의장대 시범을 보이고, 약 10명의 군인들이 총을 들고 시범을 펼치지만 다소 어설퍼 보였다.
군인들의 기 싸움
그 다음에는 인도 남성 군인들이 등장해 힘차게 행진하며 위세를 과시한다.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다소 체격이 커서 동작이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파키스탄 군인들도 등장해 서로 발을 높이 들고 손을 들어 올리며 기싸움을 벌인다.

마치 수탉이 맞서는 듯한 모습이었다. 양국의 국기가 내려지고 국경문이 닫히면서 행사가 마무리된다. 다시 버스를 타고 암리차르 시내로 돌아왔는데, 교통 체증이 심해 시내에 들어서고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싸늘한 암리차르 밤
겨우 숙소에 도착해 하루를 마무리했다. 밤이 되자 생각보다 많이 추웠다. 한국에서 챙겨온 얇은 내복과 침낭이 도움이 됐다. 숙소에 두꺼운 이불이 있었지만, 밤에는 은근히 한기가 느껴졌다.
암리차르의 실제 기온은 12도 정도였지만, 습기와 숙소 구조 때문에 더 춥게 느껴졌다. 밖에서 노숙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들의 고단함이 더욱 실감났다.
대학살 사망자 추모 공원 (Jalianwala Bagh)
오늘은 Jalianwala Bagh를 찾았다. 이곳은 1919년 영국 식민지 시절, 비무장 민간인 수백 명이 영국군에 의해 학살된 비극의 현장이다. 시내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며 황금 사원과는 약 100여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매우 가깝다.
내부에서는 비디오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고, 학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엄숙하게 관리되어 있으며 잔디밭 등 깔끔하게 보존되고 있다.

비극의 현장
영국군이 민간인을 향하여 실탄을 무차별로 난사하였던 현장이다. 붉은 벽돌에 박혀버린 총탄 자국도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전한다. 어딜 가나 영국은 말썽이다. 세계 비극의 현장에 영국이 개입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언제나 역사는 강자의 편에서 쓰여진다는 말이 진리처럼 들린다. 중고등학생 단체 관람객이 많아 어린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아마 학교에서 역사적 교훈의 현장으로 많이 방문하는 것 같다.
복잡한 골목
암리차르는 주요 관광지가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다. 시장 골목을 따라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는데,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에 개들이 지키고 있어 다소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전선이 얽혀 있고 냄새도 심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 사는 정취가 느껴졌다. 힌두교 황금사원을 걸어서 가는데 구글지도를 보니 약30분 정도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걸어가본다.
불결한 환경
가는 길이 좁은 골목길이어서 다소 뻘쭘한 느낌도 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있어서 걸어가 본다. 어제 밤에 온 비로 인하여 골목길이 질척 거리는 곳이 있다. 골목에는 사람들이 버린 각종 쓰레기, 개똥, 쇠똥이 합쳐진 정체모를 물이 흥건하다.
힌두교 사원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맡겨야 하는데, 신발 보관소가 출입문과 약10미터 떨어진 밖에 있다. 신발을 맡기고 문까지 물이 흥건한 골목길 통해 맨발로 걸어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차 오른다.

겨우 사원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와 신발을 찾는다. 신발을 맡아 주는 분이 너무나 나이가 먹고 힘들어 보여서 20루피짜리를 살짝 쥐어주니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지 사방을 두리번 거리면서 황급히 돈을 집어넣는다.
인도에는 법률상으로 카스트 제도는 진즉에 폐지되어 있지만 인도인들 사이예서는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다른 계급끼리는 결혼을 하지 않으며, 식사도 같이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름을 들어 보면 대충 계급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이같은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낮은 계급의 인도인들이 뭄바이 등 큰 도시로 이사해서 산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결혼을 해야 할 때는 본인의 계급을 알 수 밖에는 없다고 한다.
인도는 결혼을 가족 간의 결합으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을 해서 가족의 동의 없이 둘이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The Partition Museum (역사 유적지 박물관)
The Partition Museum도 방문했다. 이곳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 역사와 그로 인한 종교 갈등, 비극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었다. 영국이 5주 만에 국경을 그으면서, 힌두교도는 인도로, 이슬람교도는 파키스탄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박물관에는 당시의 사진과 자료들이 객관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세계 어느 곳의 역사에 영국의 영향이 빠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금 사원
종교의 본질은 평화와 구원인데,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해치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저녁에는 황금사원의 야경을 보러 다시 찾았는데, 밤이 되니 더욱 아름다웠다.

불빛에 반사된 황금사원의 모습은 인상적이었고, 늦은 시간까지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호수 위의 돔은 시크교 신자만 들어갈 수 있고, 입장 대기 줄이 길어 들어가지는 못했다.

365일 24시간 개방되는 사원
황금사원은 24시간 오픈을 하며 무료 식사도 제공해 준다. 곳곳에는 목마른 사람을 위하여 물통에 물을 담아서 주는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이 황금사원을 운영하는 비용은 전셰계에 있는 시크교도들이 보내주는 헌금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또한 사원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들도 모두 자원봉사자이라고 한다. 암리차르는 시크교의 성지로 터번을 두른 사람들이 많다. 또한, 이슬람교의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도 들린다. 서로 다른 종교들이 화합하고 융화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암리차르 출발
오늘은 바라나시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원래 암리차르에서 바라나시까지 바로 가는 기차를 이용하려 했지만, 20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라 뉴델리에서 한 번 환승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아침 8시 20분에 암리차르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7시쯤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나와 우버를 타고 역으로 이동했다. 툭툭 기사와 흥정할 필요도 없고, 요금도 자동 결제되어 우버가 훨씬 편했다.
올드 델리행 기차
기차는 오후 1시 30분쯤 올드 델리에 도착했다. 이곳은 빠하르간지에서 메트로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이기도 하다. 오늘 밤 9시 15분에 뉴델리역에서 바라나시행 야간열차를 타야 했기에, 남는 시간 동안 코넛 플레이스를 둘러보기로 했다.
배낭이 무겁지 않아 어깨에 메고 천천히 걸으며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햄버거 가게에서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 7시쯤 뉴델리역에 도착해 기차를 기다렸다. 출발역이라 플랫폼 변경이나 연착 걱정은 없었다.

안쓰러운 젊은 부부
플랫폼에 앉아 있는데 한 젊은 부부가 아기를 데리고 다가와 기차표를 살 돈이 없다며 도움을 청했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구걸 방식이라 처음엔 무시하고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아기를 안고 눈물을 훔치는 듯한 아내의 모습이 마음에 걸려 다시 돌아가 기차표를 구했는지 물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500루피를 건넸다. 처음엔 받지 않으려 했지만 괜찮다고 하니 결국 고맙다며 받아갔다.
인도 기차역 주변에서는 아기나 가족을 동원해 동정심을 유발하는 구걸이 흔하다.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일부는 이를 직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여행자라면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